국가유산청, 300여 년 전의 의궤 기록, 과학으로 증명하다. 영월 장릉 석재 산지 확인

박노신 기자 / 기사승인 : 2026-08-19 16: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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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고문헌과 암석학적 분석 통해 제천 송학산을 장릉 석재 공급지로 확인
▲ 영월 장릉 석물

[뉴스힘=박노신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고문헌과 현장조사,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의 석물(혼유석, 장명등, 석마 등) 제작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를 제천 송학산 일대로 확인했다.

단종은 왕위에서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영월에 유배됐으며, 1457년(세조 3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숙종 7년(1681) 노산대군으로 추봉됐고, 이어 숙종 24년(1698년)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능호를 장릉으로 정하고 왕릉 제도에 맞게 능역과 석물을 정비했다.

영월 장릉은 기존 노산대군묘를 왕릉의 형식에 맞게 정비한 능으로, 임금이나 왕비의 능을 조성할 때 설치하던 관아인 산릉도감 대신, 봉릉도감이 설치됐다.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에 따르면 선조 때 설치된 문석인과 망주석 각 1쌍은 재가공하여 사용했으며, 혼유석·고석ㆍ장명등을 비롯해 석마ㆍ석양ㆍ석호 각 1쌍은 모두 새롭게 제작됐다. 연구원이 이들 석물에 대한 비파괴 암석 조사를 실시한 결과, 모든 석물이 흑운모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월 장릉은 추존왕릉을 제외한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강원도에 조성된 왕릉으로, 능 조성에 필요한 석재를 능이 위치한 곳(능소)의 인근에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의궤에는 당시 영월 일대의 부석처를 조사했으나 적합한 석재를 찾지 못해 제천 북면 정암의 부석소로 이동하여 석질을 확인한 뒤 이곳을 채석지로 선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구원은 의궤에 기록된 정암 부석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명과 고지도 자료를 검토했다. 현재 ‘제천 북면 정암’이라는 지명은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말 제천군 북면 지역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 송학면에 편입됐으며, 이를 토대로 현재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남아 있는 정암마을을 정암 부석소의 유력한 후보지로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송학면 시곡리에 위치한 송학산은 과거 8개의 화강암 채석장이 운영됐을 만큼 양질의 화강암이 산출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원이 제천 송학산 일대 암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영월 장릉 석물과 동일한 흑운모화강암으로 확인됐다. 또한 의궤에는 능소와 부석소 사이의 거리가 약 60리(약 24km)로 기록되어 있는데, 영월 장릉과 송학산 사이의 실제 거리와도 대체로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고문헌 기록과 과학적 분석을 종합하여 장릉 석재의 공급지를 규명한 사례로, 연구 결과는 올해 내에 관련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앞으로도 석조문화유산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분석을 추진하여 석재 산지, 제작 기술을 규명하고 복원용 석재 선정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관련 연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해 나가는 적극행정을 지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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